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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2차 업체, 불법파견 아냐”…연패에 궁지 몰린 비정규직지회
2023-04-03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전 공정에 걸쳐 불법파견을 인정한 후에도 2차 협력업체는 불법파견이 아니라는 하급심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법원은 최근 선고한 두 건의 판결에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서 서열ㆍ불출 업무를 하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불법파견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에 선고된 판결의 내용은 지난해 2월 선고된 판결과 다르지 않다. 당시 서울고등법원에서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해 파견을 부정한 판결 두 건이 선고된 바 있다. 이 판결들은 모두 서열지와 서열모니터를 상당한 지휘ㆍ감독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불법파견을 보다 넓게 인정했던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의 판결이 2심에서는 뒤집히고 있는 모양새다.
소송을 주도하고 있는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는 상황을 비관적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계속된 패소에 소송을 중도 포기하는 인원도 늘어가고 있다. 특히 현대차가 10년 만의 신규채용을 꺼내 들면서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불법파견 소송에 힘이 빠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법원 "울산공장 2차 업체, 불법파견 아냐"
서울고등법원 제1민사부(재판장 전지원)는 현대차 협력업체 근로자 18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지난 1월 18일 "2차 협력업체 소속 원고들은 현대차로부터 상당한 지휘ㆍ명령을 받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차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불법파견을 인정한 반면 2차 협력업체는 모두 부정했다. 1심에서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 중 서열 작업을 직접 하지 않는 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불법파견이 인정된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소송을 제기한 근로자들은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서열ㆍ불출 업무를 담당하는 1ㆍ2차 협력업체 근로자다. 1차 협력업체는 현대차와 직접 도급을 맺고 있는 업체, 2차 협력업체는 현대차 도급 업체와 다시 도급을 맺고 있는 업체를 말한다.
현대차 부품물류업무 일부는 2차 협력업체가 수행한다. 현대차가 현대글로비스에 부품 서열ㆍ운송을 도급하면 현대글로비스가 해당 업무를 다시 도급한다. NVH코리아와는 부품공급계약을 체결해 물류업무를 맡겼고 그 업무 중 일부는 NVH코리아가 도급 계약을 맺은 또 다른 하청업체가 수행한다.
근로자들은 계약 형태만 다를 뿐 1차 협력업체와 2차 협력업체 모두 현대차의 지휘ㆍ명령을 받고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판결 결과 불법파견 여부는 1차ㆍ2차 협력업체 소속인지에 따라 갈렸다. 2차 협력업체의 경우 현대차의 지휘ㆍ명령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에서 이뤄지는 부품물류공정은 작업하는 부품의 종류가 다를 뿐 근로자가 어느 업체에 소속돼 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작업자들의 업무 수행방식이 모두 유사하거나 동일하다"며 "그러나 2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지휘ㆍ명령을 받아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파견근로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파견근로자와 도급인(현대차) 정규직 직원 사이의 상호 유기적인 보고와 지시, 협조가 중요하다"며 "본질적으로 도급인의 상당한 지휘ㆍ명령 없이는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구조라는 점이 인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열지는 '정보 공유'"...지휘ㆍ명령 범위 제한한 법원
재판부는 현대차가 협력업체 근로자에게 제공한 사양식별표, 서열지, 서열모니터, 물류관리 프로그램, 불출동선 등이 지휘ㆍ명령의 징표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사양식별표와 서열지는 자동차생산정보(MES)를 기초로 특정 부품을 순서대로 나열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추출한 것이다.
재판부는 이러한 정보들이 서열공정 작업자라면 정규직이든 사내협력업체 소속이든 외주업체 소속이든 관계없이 반드시 제공돼야 하는 객관적 정보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부품공급망 내 정보 공유를 지휘ㆍ명령으로 본다면 현대차 공장이 아니라 물류업체 자체 사업장 내에서 부품공급망을 통해 제공되는 정보를 이용해 서열 업무를 수행하는 근로자를 포함해 부품제조업체에서 서열 업무를 하는 근로자 전부가 현대차의 근로자가 된다"며 "이러한 결론은 파견의 범위를 무한정 확대해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불출 업무에 대해서도 파견을 부정했다. 불출은 서열 된 부품을 작업장으로 운반하는 것으로 일종의 운송업무다. 재판부는 "운송업무 생산효율성을 위해서는 동선이 가장 중요한데 사외 하도급업체에 불과한 2차 협력업체들이 사내의 다른 공정 작업자들의 동선, 작업시간대에 관한 정보를 모두 알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사내 모든 공정을 조율, 관할하고 있는 현대차 측에서 최적의 동선을 계획해 작업자에게 제공해서 효율성을 추구할 필요가 크다"고 했다.
재판부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가 현대차 사업에 편입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와 유사한 방식으로 부품물류공정을 수행해 왔고 사내에서 이뤄지는 부품물류공정은 현대차가 설계한 시간당 생산량과 컨베이어 공정 속도에 밀접하게 연동돼 있지만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2차 협력업체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와 동일한 물류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혼재 근무는 아니라고 봤다. 부품 종류를 기준으로 보면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와 협력업체 근로자의 업무가 명확히 구분된다. 동일한 업무를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특정 부품에 대해서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만 업무를 수행한다는 설명이다.
작업이 현대차 공장 내에서 이뤄졌다는 것만으로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현대차에 편입됐다고 볼 수 없다고도 판단했다. 서열ㆍ불출 업무가 이뤄지는 장소는 현대차와 부품제조업체, 통합물류업체, 2차 협력업체 등의 이해관계에 따라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결정돼서다.
뒤집히는 제41민사부 판결...대법원 판결에도 근로자 패소 연이어
이 판결에 이어 그다음 날 서울중앙지법에서도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불법파견을 부정하는 판결이 나왔다. 2019년에 현대차 협력업체 근로자 44명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다. 서울중앙지법 제48민사부(재판장 이기선)는 현대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이 사건에서도 직접생산공정, 엔진공정, 불출 업무를 담당한 1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불법파견은 인정됐지만 불출, 부품 입고 업무를 수행한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패소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작업은 정규직 근로자의 공정보다는 같은 2차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사외에서 작업하는 공정과 더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이들이 울산공장 내에서 작업을 했다고 해서 현대차의 사업에 편입됐다고 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불법파견을 부정하는 판단을 연이어 내놓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2월 서울고등법원에서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불법파견을 부정하는 판결이 두 건 선고됐다.
그 후 대법원에서 현대차 전 공정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왔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하는 직접생산공정뿐만 아니라 생산관리, 품질관리 등 간접 공정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을 광범위하게 인정했다.
대법원은 현대차와 직접 계약 관계가 없는 2차 협력업체라고 해서 파견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다만 소송을 낸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불법파견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놓지 않고 해당 부분만 하급심으로 돌려보냈다. 2심인 서울고등법원이 2차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해서는 다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대법원 판결은 원청과 직접 계약 관계가 없는 협력업체 근로자라고 하더라도 파견 관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선언한 최초의 판결이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하급심에서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연이어 패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앞서 소개한 고등법원 판결과 지난해 2월 선고된 고등법원 판결의 1심은 모두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에 대해 불법파견을 인정했던 일명 '제41민사부' 판결들이다.
1심에서 현대차 울산공장 2차 협력업체 근로자에 대한 판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서울중앙지법 제41민사부 판결과 제48민사부 판결이다.
제41민사부는 제48민사부보다 2차 협력업체 근로자의 불법파견을 더 넓게 인정하고 있다. 현대차와 1차 협력업체 간 계약과 1차 협력업체와 2차 협력업체 간 계약 내용에 큰 차이가 없는 점, 2차 협력업체 근로자와 1차 협력업체 근로자의 업무가 유사한 점 등을 고려해 불법파견을 모두 인정했다.
반면 제48민사부는 서열 업무에 한해서만 불법파견을 인정한다. 서열지나 서열모니터를 보는 2차 협력업체 근로자는 현대차로부터 지휘ㆍ명령을 받았다고 봤지만 서열지를 직접 보지 않고 부품을 운반하는 불출 업무에 대해서는 파견을 인정하지 않는다.
정기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법률원장은 2021년 12월 노동법률을 통해 "제48민사부 판결은 여러모로 이해하기 어렵다"며 "2차 협력업체나 공정별로 판단을 다르게 하는 것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소속된 업체가 같고 같은 현대차 사업장으로 파견됐는데 일부 구성원은 사업에 편입됐다고 보고 일부 구성원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한 점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제41민사부 판결은 항소심에서 뒤집히고 있는 추세다. 게다가 고등법원에서는 서열지와 서열모니터를 지휘ㆍ감독의 징표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2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에게 불리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기호 원장은 "대법원 판결은 2차 협력업체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하급심에서 다시 판단하라는 취지이기 때문에 하급심이 대법원 판결에 따라 판단할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차와 2차 협력업체 사이에 현대글로비스가 들어오면서부터 공장 외부에도 협력업체 사업장이 생기고 그 사업장이 어느 정도 규모도 갖추고 있어 법원이 그 부분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로서는 하급심에서 2022년 고등법원 판결과 같은 취지의 판결이 일관되게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연이은 패소에 공개채용까지...궁지 몰린 비정규직지회
근로자들의 전망은 비관적이다.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2차 협력업체에 대해 진전된 판결이 나오지 않는 이상은 이러한 판결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근로자 측에서는 대법원 파기환송심만 바라볼 수밖에 없다.
김재민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사무장은 "1심에서 2차 협력업체도 승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판결들이 2심에서는 뒤집히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대법원 파기환송심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와야 2차 협력업체 판결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 수 있겠지만 파기환송심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지회의 상황은 좋지 않다. 소송이 장기화되고 패소가 이어지면서 소송 비용에 부담이 커지자 소를 취하하고 조합을 이탈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현대차가 10년 만에 생산직을 공개채용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상황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승소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비용을 부담하면서 소송을 이어 나가는 것보다 신규채용에 응시하는 것이 낫다는 계산에서다.
그렇다고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불법파견 투쟁을 그만둘 수도 없다. 현행 노동조합법상 원청인 현대차에는 직접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교섭 요구에 응할 의무가 없다. 소송을 통한 투쟁 외에는 선택지가 없는 것이다.
김 사무장은 "일방적인 신규채용은 노동조합 부수기와 다름없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더 이상 지회의 존재 이유가 없어지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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